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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무서운"멸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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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附图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고등학교 입학 수능시험까지는 9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어요. 9개월이면 270일, 시간으로 따지면 6840시간이었어요. 수능시험까지는 아득했죠. 시간을 아낄 줄 몰랐어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몰랐었죠.
중학교를 다시 다녀서 한달 정도 지난 후였어요. 물리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저의 이름을 부르더군요. 엉겁결에 일어났는데 저보고 문제를 풀어보라는 거에요. 그때 저는 무협지를 보고 있었어요. 소설에 정신이 팔려서 언제 문제가 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죠.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던진 칠판지우개가 날아왔어요. 피했어요. 뒤에 있는 애가 맞았죠.
선생님은 수업을 정지하고, 저를 보더니만 뺨을 후려쳤어요.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손자국이 얼굴에 그대로 찍혔어요. 지금도 혹간 그 생각을 하면 치가 떨려요.
“넌 진짜 똥망채(연변토배기 말, 똥 담는 그릇이라는 뜻)야! 부모님의 아까운 돈을 낭비하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만약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면 전 중국 11억 인구에 문맹이 없겠다…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내가 이 자리에서 너한테 절을 한다! ”
그 땐 눈물이 났어요. 선생님한테 그런 멸시를 당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것도 남학생 여학생 다 지켜보는 앞에서 멸시를 당하니 후~ 당장 죽고 싶었어요.
제가 읽던 무협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요. 그리고는 미친 사람처럼 학교를 뛰어 나갔어요. “당장 퇴학하라!”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어요.

(내 머리를 때려서 상처를 입히고, 오늘은 뺨을 치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서 퇴학하라고?)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못하면 진짜 사람이 아니야.)
(저 자식을 내 앞에서 꼭 절하게 만들 테야.)

그 때의 목표는 단 한가지였어요. “어떻게 하든 저 자식을 앞에서 절을 하도록 만들어야 돼!” 밤새도록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건 그 후부터였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니 희망이 보였어요. 선생님이 내 앞에서 절을 하는 건 시간문제 인 것 같았어요. 손꼽아 수능시험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듬해 3월 학교내부 수학, 물리 시험에서 모두 1등을 했어요.
학교의 역사에도 없는 화학시험성적 100점도 그 때 맞아봤어요.
4월 현급 지역 물리경색(중국 길림성 왕청현-인구 30만 정도)에서 1등을 했어요. 푸짐한 상도 받았어요. 일본어도 90점 이상은 보통 일이었어요. 밤새도록 일본어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했거든요.
그날이 오고야 말았어요.
89년 고등학교입학 수능시험에는 646(총720점)점을 맞았어요. 좋은 지방명문고등학교(연변1중)에 갈 수 있었어요.
그 때, 울분을 터뜨렸죠. 절을 받겠다고 선생님 댁을 찾아갔어요. 헌데 뭔가 속에 걸려서 집을 들어가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돌멩이를 찾아 들고 선생님 댁 창문을 향해 던졌어요.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돌아져 뛰었죠.
(지금도 선생님은 그 때 집에 날아든 돌멩이 주인을 몰라요.)
“와~~~ 진짜 후련해!”

공부하는데 재미를 붙였던가 봐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3년 열심히 하니 손꼽히는 좋은 대학교로 갈 수 있었어요.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YB대학 사범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어요.
그리고 2년 뒤, 한국으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한국으로 유학하기 전, 중학교 동기들과 같이 장용환 선생님의 집에 갔었어요. 9년이 지난 뒤였지만 치가 떨려서 가지 않으려는 저를 동기들이 끌고 갔어요. 선생님의 집에 들어가면서 상기된 선생님의 눈시울을 보았어요. 뭐라 말씀은 하지 못하고, 저를 쳐다보더군요.
뒤늦게 본 앨범에서 저의 얼굴을 찾아 볼 수 있었어요. 그 밑에 이렇게 말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 “내가 절하기를 기다리는 학생 최공”
그 때, 저의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멸시를 당해본 사람이 그 멸시의 가치를 느낄 때에만 이해할 수 있어요. 아니 기쁨인지, 슬픔인지 저 자신은 몰랐어요.
그래요. 아마 저 같은 학생들에겐 일반적인 “힘내라!”는 식의 고무격려는 쓸모없었을 거에요. 필요한 것은 선생님 특유의 칼을 들고 학생의 맘속 생각들을 도려내야 되는 거죠.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의 멸시를 당하는 것이 맘속의 강한 힘을 보여주도록 해요.

한국에서 박사5학기를 맞는 현재, KBS9시 뉴스에서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서 선생님을 구박했다는 뉴스를 볼 때나 스승의 날이 되면 저한테서 생겼던 선생님의 사랑스러운 “멸시”를 생각해보게 되어요. 학생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르면서도 아주 잔혹한 멸시를 주는 선생님의 사랑. 이러한 “멸시”는 한 사람을 더욱 성장하게 만들죠. 저의 인생에서 선생님의 “멸시”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어요.

뭔지 모르겠지만 저는 존경해요. 스승님이니까요.
저 자신은 이후 훌륭한 사람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장용환 선생님 덕분에 열심히 사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4년 5월의 어느날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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